드라마 이산에서 그려지는 세손 이산이 정조 즉 임금으로 즉위하는 과정은 대리 청정을 하다가, 실수로 대리 청정을 박탈 당하고, 영조가 뇌졸증으로 쓰러지는 과정에서  정순 왕후가 편전에 들어 세손을 겁박하고 정순 왕후가 주도하는 군사 반란이 일어나는 등 그야말로 드라마스럽다.

그러나 역사속 세손이 즉위 하는 과정은 이와 다르다. ( 중학생이 될 아들에게 정확한 과정을 알려 줄 필요성을 느껴서 정리해 본다.) 역사 속에서는 대리 청정을 수용 하는 과정이 드라마틱 하지만 대리 청정이 내려진 그 순간 사실 왕위를 양위한 것과 같다. 개인적으론 드라마에서 대리 청정이 내려진 이 후 세손이 보다 빨리 즉위해서 정조의 보다 다양한 정치적 업적을 다루기를 바랬다.  그러나 드라마 이산은 왕이 되는 과정을 지나치게 비약시키고 흥미에 편중한 나머지 드라마 전체 의 2/3이상을 할애 함으로 정조의 통치기간에 대한 안배에 이미 실패해 버렸다. 이 점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문득 일본 드라마 무인 토시이에 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비교적 역사속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청년,중년,노년의 시기를 적절히 안배하고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  재미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그들의 연출력과 줄거리 구성 능력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 역사속  정조 즉위 과정을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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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영조51)11월 20일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 할 뜻을 내 비춘다. 이에 경의황후 (혜경궁 홍씨)의 숙부 홍인한이 왕에게 대놓고 반발한다.(홍인한은 평소 경솔한 성격으로 사도세자, 경의왕후 , 세손의 미움을 받아 노론 벽파에 가담 했다는 설이 있다.)

임금(영조)이 말하기를

“신기(神氣)가 더욱 피곤하니 비록 한 가지의 공사(公事)를 펼치더라도 진실로 수응(酬應)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데도 어찌 만기(萬幾)를 수행하겠느냐? 국사(國事)를 생각하느라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다. 어린 세손이 노론(老論)을 알겠는가? 소론(少論)을 알겠는가? 남인(南人)을 알겠는가? 소북(少北)을 알겠는가? 국사(國事)를 알겠는가? 조사(朝事)를 알겠는가? 병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으며, 이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는가? 이와 같은 형편이니 종사(宗社)를 어디에 두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알게 하고 싶으며, 나는 그것을 보고 싶다.(영조가 내몸이 피곤하고 기력이 쇠하니 세손을 잘 가르쳐  양위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홍인한이 말하기를,

“동궁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 판서이나 병조 판서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조사(朝事)까지도 알 필요 없습니다.”[三不必知說]

[중략]

임금이 한참 동안 흐느껴 울다가 기둥을 두드리며, 이르기를,

“경 등은 우선 물러가 있거라.”하였다.

(왕이 '알게 하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알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신하...'싸가지 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영조가 흐느껴 울 정도 였으니 얼마나 답답한 마음 이었는지 알 수 있다.  )


1775년 11월 30일

이 후에도 대신들은 왕의 대리 청정 전교에 대해 수 없이 반발하며 홍인한은 정후겸,심상운 등과 더불어 세손과 홍국영을 모함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자 영조는..도성을 수비하는 순감군의 지휘권을 동궁에게 이관하도록 한다.

순감군(巡監軍)은 동궁에 수점(受點)하고 이비(吏批)나 병비(兵批)는 중관(中官)이 대전(大殿)에 품달한 뒤에 동궁에서 수점하도록 명하였다.(수점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결제서류에 도장을 찍는 행위로 사실상 지휘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즉 동궁의 허락없이 군사를 움직일 경우 이는 명백한 반역 행위로 삼족을 멸하는 중죄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군의 장수들이 노론파라 하여도 영조가 동궁에게 지휘권을 부여한 이상 뚜렷한 명분 없이 군사를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군권을 중전과 신하들이 쥐고 있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더구나 정순 왕후가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해도 내명부를 관리하는 중전이 군권을 휘두를 수는 없는 법이다. 드라마는 그냥 소설이라고 여기며 봐야한다. 그리고 드라마와 같은 상황이 실제 벌어졌다면 정순 왕후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가 죽음으로 끝나는 엄청난 사화가 발생 했을 것이며 노론은 붕괴되고 소론이 정권을 잡았을 것이다.거병범궐을 한 마당에 최석주(이조판서-드라마속 가상인물)가 노론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해도 세손과 협상한다는 것은 명분이 너무 약하다.실제 반역 행위를 용서했다면 노론은 그 세력을 믿고 더 활개를 쳤을 것이며 정조는 무능한 군주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반역에 용서란 있을 수 없는 것이 통치 규범이다.)

이로서 대리청정  전에 세손에게 군권을 장악할 기회를 준다. 사실 정조가 왕이 되는 과정에는 영조의 치밀한 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행 부사 서명선이 홍인한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다.

이날 영조는 서명선의 상소에 '옳다'는 말을 연발한다.

1775년 12월 3일

지난달 20일 대신이 입시하였을 때 좌의정 홍인한(洪麟漢)이 감히 ‘동궁(東宮)이 알게 할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전석(前席)에서 진달하였다고 합니다. 저군(儲君)이 알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알아야 하겠습니까? 아성(亞聖)이 임금을 공경하는 의(義) 를 비록 이런 사람에게 책임지우기는 어렵겠으나, 그 무엄하고 방자함은 아주 심한 것이었습니다.


1775년 12월 7일

왕세손에게 대리 청정을 명함으로 사실 상 양위를 하게 된다.그리고 3개월뒤 영조가 승하한다.

왕세손에게 서정을 대리 청정하게 하였다.

임금이 왕세손에게 명하여 서정(庶政)을 대리 청정하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이제서야 겨우 순조롭게 결말이 났다. 83세가 다 되어 충자(沖子)가 나에게 효도함을 보게 되니 천만 다행이다. 구저로 가겠다는 하교는 잠시 보류하라.”하였다.


이로서 세손은 왕이 될 발판을 확실히 굳히게 된다. 물론 이것으로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노론이 장악한 정권 하에서 정조의 정치적 기반은 사실 상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왕이 된 직 후에도 호위청의 군사가 침전에 난입하는 조선 왕실 역사상 전무 후무한 사건을 겪기도 한다.

정조의 위대함은 아비를 죽인 대신들의 끊없는 괴롭힘 속에서도  연산군처럼 복수심에 불타 사화를 일으키지 않고. 적들이 넘쳐나는 궁궐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조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왕이 되기 위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온갖 난관 속에서도 개혁을 이끌어 간 탁월한 통치 능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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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정조 열풍 - '한성별곡, 정조 암살 미스테리 8일, 이산'에서 정조 이미지

    Tracked from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2008/02/13 13:48  delete

    최근에 정조대왕 사망 당시의 정황을 가공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룬 드라마 '한성별곡'과, 세손 시절로부터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는 과정까지를 포함한 '이산', 케이블 TV CGV에서 10월 말부터 시작한 드라마 '정조 암살 미스테리 8일'(이하 8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는 것을 보며, 언론에서는 '정조 열풍'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열심히 비교하고 있는데 나 역시도 '누가 제일 나을까, 어떤 사람이 잘 어울릴까, 각자 어떻게 다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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